지역화폐는 지역경제 활성화와 소상공인 지원을 목적으로 전국적으로 확산되었으나, 규모 확장과 장기 운영 과정에서 구조적 한계와 부작용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2025년 기준 전국 200여 개 지방자치단체에서 5조 원 규모의 지역화폐가 발행되면서 재정 부담, 부정 유통, 지역 간 격차 심화 등 다층적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본 보고서는 지역화폐 확대 정책이 초래하는 주요 문제점을 체계적으로 분석합니다.
재정적 부담과 지자체 간 불균형 심화
지자체 재정 압박 가중
지역화폐의 할인 혜택(5~10%)과 운영 비용은 지자체 예산으로 충당되며, 이는 재정 상태에 따라 혜택 규모가 크게 달라집니다. 경기도 화성시는 2025년 5,000억 원 규모의 지역화폐를 발행하며 인센티브를 10%로 확대했으나, 재정이 열악한 강원도 원주시·경북 포항시 등은 발행 규모를 축소했습니다. 행정안전부 연구에 따르면 지역화폐 운영 비용의 30%가 행정·유통 비용으로 소모되며, 이는 재정 취약 지자체에게는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지역 간 "부익부 빈익빈" 구조 고착화
재정 여력이 있는 대도시는 할인율을 높여 소비 유입을 촉진하는 반면, 중소 지자체는 혜택 축소로 역유출을 겪습니다. 2024년 기준 서울·부산 등 대도시는 자체 예산으로 지역화폐를 유지했으나, 경북 경주시는 발행액을 1,300억 원에서 700억 원으로 대폭 줄였습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한 지자체의 매출 증가가 인접 지역의 감소를 대가로 한다"고 지적하며, 이는 지역 간 경쟁을 촉진해 경제적 효율성을 저해합니다.
운영 비효율성과 부정 유통 문제
중복·분산된 시스템의 낭비
각 지자체별로 독자적인 지역화폐 플랫폼을 운영하며 관리 비용이 증가합니다. 2022년 기준 예산의 30%가 발행·정산 비용으로 소모되었으며, 광역-기초 지자체 간의 중복 발행(예: 대전시 '온통대전'과 대덕구 '대덕이로움')으로 자원이 낭비되었습니다. 블록체인 도입으로 연간 유지비를 40% 절감한 성남시·부산시 사례와 달리, 대부분의 지자체는 기존 시스템 유지에 매년 수십억 원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깡" 현상과 부정 사용 확대
지역화폐의 현금화("깡")는 시스템의 근본적 취약성을 드러냅니다. 대구 달서구의 경우 발행액의 30%가 불법 환전되었으며, 울산시에서는 할인율 하락으로 가입자 수가 3년 만에 52만 명에서 30만 명으로 급감하는 등, 신뢰도 저하가 이용 감소로 이어졌습니다. 2024년 상반기 전국 단속에서 141건의 부정유통이 적발되었으며, 이 중 39.7%가 현금화 사례였습니다.
소비자 및 시장의 왜곡 현상
소비 선택권 제한과 편의성 감소
지역화폐 사용처를 소상공인·전통시장으로 제한함으로써 소비자의 후생이 감소합니다. 농촌 지역에서는 농협 하나로마트 이용이 금지되면서, 주민들이 20km 이상 떨어진 읍내로 이동해야 하는 불편이 발생했습니다. 서울-성남 간 통근자의 경우 퇴근 후 지역화폐 사용이 제한되어 실질적 효용이 낮아집니다.
시장 왜곡과 물가 상승 압력
지역화폐의 과도한 공급은 특정 업종에 대한 수요를 집중시켜 물가 불안정성을 초래합니다. 2024년 충북 옥천군에서는 지역화폐가 금 구매에 악용되며 시세와의 괴리가 발생했고, 슈퍼마켓·음식점 업종에 소비가 편중되면서 소매업 구조가 왜곡되었습니다.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지역화폐 확대는 단기 소비 진작 효과는 있으나 장기적 물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정치적 논란과 제도적 한계
정책의 포퓰리즘화와 특혜 의혹
지역화폐는 정책 효과보다 정치적 홍보 도구로 활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경기도의 경우 전임 도지사(이재명)의 핵심 정책으로 추진된 '경기페이'가 특정 운용사(코나아이)와의 유착 의혹으로 수사를 받았으며, 이는 정책의 공정성에 대한 신뢰를 훼손시켰습니다. 2025년 더불어민주당의 '지역화폐법' 발의 역시 여당으로부터 "현금 살포성 포퓰리즘"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중앙-지방 정책 간 괴리
행정안전부는 2025년 지역화폐 국비 지원을 전액 삭감하며 지자체 자율성 강화를 주장했으나, 이는 재정 약자의 운영 중단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2023년 국비 지원 중단 이후 경기도 군포시·동두천시 등에서 캐시백 비율을 축소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정책 불일치는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을 위협합니다.
결론: 지속가능성을 위한 시스템 개편 방향
지역화폐의 규모 확대는 단순한 예산 증액이 아닌 구조적 개혁을 수반해야 합니다. 첫째, 블록체인 기술 도입을 통해 부정 유통을 근절하고 운영 비용을 절감해야 합니다. 성남시 '착(Chak)' 플랫폼은 블록체인으로 유지비를 40% 절감한 사례를 참고할 수 있습니다. 둘째, 광역경제권 단위의 통합 발행을 통해 지자체 간 경쟁을 완화해야 합니다. 영국 '브리스톨 파운드'는 공공요금 납부 허용·엄격한 가맹점 심사로 현금화를 차단한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습니다. 셋째, 농촌 등 취약 지역에 대해 사용처를 확대(예: 농협마트 허용)하고 할인율을 차등화하는 유연한 제도 설계가 요구됩니다. 지역화폐가 진정한 지역경제의 활력소가 되기 위해서는 정치적 논의를 넘어 기술·제도적 혁신이 동반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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