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정책은 2018년 본격 도입 이후 급속한 확산을 거쳐 현재 연간 20조원 규모로 성장했으나, 정책 효과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정부는 효과가 미미하다며 예산 삭감을 추진하는 반면, 일부 지자체는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들과 현실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지역화폐 정책이 애초 의도와 달리 재정 누수, 지역 불균형 심화, 시장 왜곡, 정치적 포퓰리즘 도구화 등 다각도의 구조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음이 확인되고 있다.
국가 및 지방재정 압박과 효율성 악화
지역화폐 정책의 가장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막대한 재정 부담과 그에 비해 미미한 경제적 효과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전국 9조원 규모의 지역화폐 발행에 따른 정부 보조금 지출은 연간 9천억원에 달하며, 인쇄비와 금융 수수료 등 부대비용까지 포함하면 경제적 순손실이 총 2천260억원에 이른다.
지역화폐 예산 규모는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급격히 팽창했다. 2018년 4천억원에 불과했던 지역화폐 판매액은 2020년 13조3천억원, 2022년에는 27조2천억원까지 증가했다. 국비 지원 역시 2019년 8백억원에서 2021년 1조2천522억원으로 급증했다가, 윤석열 정부 들어서는 3천억원 수준으로 대폭 축소되었다.
정부가 지역화폐 예산을 삭감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경기연구원이 주장하는 44.4%의 추가소비율에도 불구하고,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2010년부터 2018년까지의 분석 결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지역경제 활성화 효과가 관측되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최상목 경제부총리는 "많은 전문가들이 지역화폐 발행 시 소비 진작 효과가 매우 제한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며 정부의 회의적 입장을 명확히 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지방재정 불균형 심화이다. 수도권의 '부자 지자체'들이 올해 지역화폐 발행 규모를 대폭 늘리고 있는 반면, 재정 형편이 빠듯한 비수도권 지자체는 발행 규모를 줄이고 할인율도 축소하고 있다. 성남시는 올해 역대 최대인 7천500억원어치를 발행하여 작년 대비 3배 이상 늘렸고, 화성시도 5천억원어치로 2천억원을 증액했다. 반면 대전시의 지역화폐 활성 지수는 0.22로 전국 최하위를 기록했으며, 5개 자치구 모두 올해 지역화폐를 미발행할 계획이다.
시장 메커니즘 왜곡과 소비행태 변화
지역화폐는 특정 지역 내 소상공인에게만 사용이 제한되어 있어 근본적으로 시장 경쟁을 왜곡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특정 지역 내에서만 사용하는 지역화폐는 일종의 보호무역 조치처럼 인접한 다른 지역의 소매업 매출을 감소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한다.
더 큰 문제는 모든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역화폐를 발행하면서 애초 의도했던 효과가 상쇄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전국 243개 지자체 중 94%인 229개가 지역화폐를 발행했으며, 현재는 182개 지자체가 지역화폐를 운영하고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교수는 "지역화폐는 낙후된 지역에 한정해서 발행해야만 지역 경기부양 효과가 있으며, 동시다발적으로 전국에서 발행하면 효과는 상쇄되고 재정만 낭비된다"고 지적했다.
지역화폐의 소비 대체효과도 심각한 문제이다. 기존에 신용카드로 구매하던 것을 지역화폐로 전환했을 뿐으로, 전체 소비 총량은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의 분석에 따르면, 2020년 1차 코로나 긴급재난지원금의 한계소비성향이 0.217에 불과했으며, 이는 100만원을 받아도 소비는 22만원만 늘린다는 의미이다.
소비자들의 지역화폐 사용 패턴을 보면 시장 왜곡 현상이 명확히 드러난다. 경북도의 데이터 분석 결과, 지역화폐 결제가 가장 많은 업종은 슈퍼마켓, 일반한식, 주유소 순이었으며, 결제 금액은 주유소에서 가장 컸다. 이는 지역화폐가 일상적인 필수 소비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디지털 결제 생태계와의 충돌
지역화폐는 기존 민간 간편결제 시스템과 경쟁하면서 디지털 결제 생태계의 효율성을 저해하는 측면이 있다. 각 지자체가 독자적인 지역화폐 시스템을 운영하면서 소비자들은 여러 개의 앱과 카드를 관리해야 하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
경상북도의 경우 23개 시군별로 9개 수급사가 각기 다른 지역화폐를 발행하고 있어, 이용자 편의 제고를 위해 시군 지역화폐 통합 발행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전국적으로도 마찬가지 문제로, 지역화폐 시스템의 파편화가 디지털 결제 인프라의 효율성을 저해하고 있다.
토스와 같은 민간 간편결제 플랫폼에서는 제로페이, 지역화폐 등 타 결제수단이 해당 페이에 가맹되어 있다면 사용 가능하다고 안내하고 있어, 민간 플랫폼이 공공 결제 시스템을 수용하는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통합 과정에서 민간 기업의 혁신 동력이 제약받을 우려가 있다.
지역 간 격차 심화와 형평성 문제
지역화폐 정책은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기보다는 오히려 격차를 확대하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지역화폐 활성 지수를 살펴보면, 경북 구미시가 2.50으로 1위를 기록한 반면 대전광역시는 0.22로 최하위를 기록하여 11배 이상의 격차를 보였다.
이러한 격차는 지자체의 재정 여건에 따라 결정되는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다. 부자 지자체는 자체 예산으로 대규모 지역화폐를 발행할 수 있지만, 재정이 열악한 지자체는 발행 규모를 줄이거나 아예 발행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충남의 경우 올해 지역화폐 발행액을 지난해와 같게 유지하기로 한 지자체는 아산시, 예산군, 홍성군뿐이며, 나머지는 축소하거나 미정 상태이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이러한 문제를 지적하며 "재정여력이 충분한 지방자치단체가 많은 예산을 신청하게 되고 정부는 부자 지방자치단체에 많은 국비를 지원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이는 지역화폐 정책이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애초 목표와 반대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인구 감소 지역에 대한 추가 지원 방안이 논의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지역화폐 시스템 자체가 재정 여건이 좋은 지역에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러한 격차 해소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정치적 포퓰리즘 도구화 양상
지역화폐는 정치적 목적으로 활용되는 대표적인 사례로 지목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핵심 공약인 '전 국민 25만원 지급'과 연계하여 지역화폐법 개정안이 추진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박희승 의원 등 민주당 소속 의원 14명이 발의한 개정안은 정부의 지역화폐 예산 편성을 의무화하고, 기본소득을 지역화폐로 지급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재명 대표와 김동연 경기도지사 간의 갈등도 지역화폐의 정치적 성격을 잘 보여준다. 김동연 지사는 "전 국민에게 25만원씩 나눠주면 13조원이 든다. 13조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돈이 아니라 다른 모든 사업을 포기한 결과"라며 이 대표의 정책을 정면 비판했다. 이는 같은 당 소속임에도 불구하고 지역화폐 정책의 실효성에 대해 근본적인 의견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전남도가 지역화폐 발행 예산을 70억원에서 175억원으로 대폭 늘리기로 한 사례는 지역화폐가 정치적 위기 상황에서 즉석 대응책으로 활용되는 양상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례들은 지역화폐 정책이 경제적 논리보다는 정치적 필요에 의해 좌우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국민의힘은 지역화폐법 개정안을 "일회성으로 25만원씩 지원하는 13조원 현금살포법을 넘어 한술 더 떠 항구적으로 현금을 살포하는 악법중의 악법"이라고 비판하며, 정치적 대립 구도가 심화되고 있다.
결론
지역화폐 정책은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명분 하에 도입되었지만, 실제로는 재정 누수, 시장 왜곡, 지역 간 격차 심화, 정치적 도구화 등 다각도의 부작용을 야기하고 있다. 특히 모든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지역화폐를 발행하면서 애초 의도했던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는 상쇄되고, 발행 비용과 행정 부담만 증가하는 제로섬 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근본적으로는 지역화폐 정책의 효과에 대한 객관적이고 종합적인 재평가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전면적 확산보다는 특정 조건과 지역에 한정한 선별적 운영을 통해 정책 효과를 극대화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정책 방향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치적 도구화를 방지하기 위한 객관적인 성과 평가 체계를 구축하고, 재정 건전성과 지역 간 형평성을 고려한 합리적인 운영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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