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날, 누구도 유대교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성전은 단순한 건물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임재하는 곳, 제사의 중심, 유대인 정체성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초토화하고 성전을 완전히 파괴한 그 순간, 사실상 유대교는 종말을 맞이해야 했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유대교는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강해졌고,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과연 그 비밀은 무엇이었을까?
파괴의 순간: 서기 70년 성전 붕괴
제1차 유대-로마 전쟁(66~73년)은 그리스계 로마인과 유대인 사이의 종교적 분쟁에서 시작되었다. 66년 카이사레아에서 지역 시나고그 앞에서 제사를 드리는 그리스인들과의 다툼이 발단이 되어, 유대인들의 대규모 반란으로 확산되었다.
서기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가 이끄는 로마군은 마침내 예루살렘을 함락시켰다. 성전은 완전히 불에 타 파괴되었고,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폐허가 되었다. 로마 병사 하나가 성전 문의 돌쩌귀가 있는 컴컴한 곳을 향해 불을 던졌고, 횃불이 떨어진 곳은 지성소 바로 옆에 있는 예배실이었다. 이 예배실은 오래된 목재로 장식되어 있었으며 제사용 동물을 태우기 위한 가연성 물질과 기름단지 등이 비치되어 있어서 활활 타오르는 화염이 춤을 추었다.
당시 유대교는 성전 중심의 종교 체계였기에, 성전의 붕괴는 종교 시스템 전체가 무너지는 것을 의미했다. 이 시점에서 대부분의 종교라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런데 유대교는 달랐다.
변화의 핵심: 랍비 유대교의 등장
성전 파괴라는 위기 상황에서 유대교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했다. 핵심은 제사 중심에서 율법 중심으로, 제사장에서 랍비로, 성전에서 회당으로, 제물에서 공부와 기도로의 전환이었다.
이 변화의 중심에는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라는 인물이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이 함락되기 직전, 극적으로 도시를 탈출하여 야브네(Jamnia)라는 작은 성읍에 학교를 세웠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만나 그가 차기 로마 황제가 될 것이라고 예언하면서, 자신이 세우게 될 조그만 학교만은 파괴하지 말고 보존해 달라고 부탁했다.
예루살렘은 불에 타고 성전은 약탈당했지만 야브네만큼은 살아남았다. 야브네의 생존은 유대 역사 전체를 소생시키는 마지막 남은 불씨였다. 야브네에서 뛰어난 랍비들이 배출되기 시작했고, 점차 번영의 꽃을 피웠다. 토라(율법)의 중대한 문제들을 토론하여 결정하는 고등 아카데미 학사원이 생겼고, 이어 최고 법정기관에 준하는 통치 기구들이 탄생했다.
요하난 벤 자카이의 가르침은 유대 역사의 커다란 변곡점을 가져왔다. 리더십이 바뀐 것이다. 성전 중심의 성직자 체제에서 랍비 중심의 교육 시스템으로 전환되었다. 이제 유대교는 토라(율법)를 맨 중앙에 올려놓고 동심원을 그리면서 세상을 향해 나가는 급격한 전환을 이룬 것이다.
탈무드와 회당: 새로운 성전
성전을 잃은 유대인들은 '배움의 공간'과 '공동체'를 통해 새로운 종교적 구조를 세워나갔다. 무엇보다 야브네에서 이루어진 주요 업적은 탈무드가 탄생하는 구심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탈무드는 분명한 계획과 목적을 가지고 만들어진 것으로,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건들에 관한 다양한 고민과 사고들의 기록이었다. 탈무드는 기원후 220년경에 형성된 미슈나와 기원후 500년경에 형성된 게마라로 구성되어 있다. 미슈나는 여섯 가지 주제들 즉 농사법, 안식일 및 절기법, 결혼 및 이혼법, 일반 형법, 희생제물법, 레위인의 성결법으로 기록되어 있다.
한편 회당(시나고그)은 제2차 성전 파괴 이후 랍비들의 영향 아래 정착된 것으로, 무엇보다 유대인들의 생존에 늘 심각한 도전과 위협이 되었던 적대적 주변 환경에 대응하는 역할을 했다. 회당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명은 바벨론 포로기 중에 회당 제도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바벨론으로 포로되어 간 유대인들이나 유다 땅에서 쫓겨나 지중해 주변 지역으로 떠난 유다 사람들은 성전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었기에, 성전 기능의 일부인 기도와 율법의 전수를 대신하는 회당의 제도가 생겨났다.
회당은 (1) 기도하고 성경을 읽는 제의적 기능, (2) 유대인 공동체 안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서 율법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재판정의 기능, (3) 유대인 공동체가 공동으로 어떤 결의를 할 때 회의를 하는 장소로의 기능, (4) 유대인들이 함께 모여서 서로 안부를 묻고 대화하는 모임의 장소로서의 기능, (5) 먼 지역의 유대인이 자기 지역으로 왔을 때, 그들을 위해서 숙박을 제공하거나 그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기능도 있었다.
디아스포라와 유대인의 정체성 유지 전략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의 패배 결과로 유대인은 자신의 국가를 잃어버리고 흩어져 로마 제국의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되는 디아스포라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디아스포라는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순종의 결과로 일어난 징계와 심판이었지만, 동시에 흩어진 곳에서도 하나님이 다시 모으시고 그 땅에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는 약속의 의미도 담고 있었다.
놀랍게도 세계 곳곳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어디서든 똑같은 방식으로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몇 가지 공통된 요소들을 통해 정체성을 지켜나갔다:
히브리어 교육: 탈무드 자녀교육에서는 어린 아이들부터 히브리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히브리어는 유대인의 언어이며, 탈무드라는 유대교 성서를 읽고 이해하는 데 필요한 언어였다. 히브리어는 유대교의 역사와 전통, 문화, 인문학 등을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언어였으며, 유대교의 신앙 생활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안식일 준수: 유대교의 안식일인 샤밭은 히브리어로 '쉰다'는 의미에서 비롯되었다. 유대민족은 오늘날까지 매주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으며, 일몰이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전통에 따라 안식일은 금요일 해질 때부터 토요일 저녁 해질 때까지이다. 이 기간 동안에는 요리나 청소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노동을 금지하고 있다.
음식법(코셔): 코셔는 구약성서의 레위기에 주로 언급되어 있고 출애굽기, 신명기에도 나오는 음식에 대한 구절을 바탕으로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왔다. 코셔 전통은 음식을 정결하게 조리하고 식재료도 인도적으로 대해야 한다는 가르침에서 비롯된 것이다.
절기 축제: 유월절과 같은 절기를 통해 유대인들은 민족적 구원과 해방의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했다. 유월절 의식은 니산월 14일 저녁에 성전에서 양과 염소를 죽여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가정에서는 식사를 통해 친교하는 역사적인 축제였다. 서기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기 전까지는 순례자들의 축제였지만 그 후로는 이 의식을 할 수 없게 되었으나, 사마리아 유대인들은 지금도 유월절 축제 예식을 행하고 있다.
신화가 아닌 구조의 힘
다른 종교들이 중심 신전이 무너지면 그 자체로 소멸되기도 하는 것과 달리, 유대교는 종교가 아니라 '살아 있는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생존할 수 있었다. 랍비 유대교가 고대 후기(2~8세기) 중 3~6세기 동안 성립되면서, 히브리 성경의 마소라 본문과 탈무드가 이 시대 동안 편찬 또는 성립되었다.
AD 1세기에 제2성전이 파괴되어 사두개파 등 성전 중심의 기존 세력이 몰락하게 되자 바리새파가 주류가 되어 유대교의 랍비는 바리새파가 자리매김하였다. 점차 랍비가 유대교 공동체 업무를 맡게 되었고 이후에 봉급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랍비와 율법(토라), 시나고그를 중심으로 한 랍비 유대교로 발전하여 현대까지 주류 종파로서 이어지고 있다.
이제부터 유대교는 토라 중심의 책의 종교로 전환된 것이다. '하나님은 특정 장소에 머무는 존재가 아니다'라는 보편 신학의 싹이 트기 시작한 것이다.
무너져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
신앙은 건물에 있지 않다. 구조에 있다. 유대교는 그것을 몸소 증명한 종교다. 유대교의 생존은 단지 운이 좋았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고통을 '끝'이 아니라 '진화'의 기회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 진화의 중심에는 율법과 공동체, 교육과 기억이 있었다.
성전이 무너졌어도, 유대인의 정신은 무너지지 않았다. 오히려 성전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의존하던 종교에서 어디서든 실천할 수 있는 생활 종교로 변화했다. 회당이라는 작은 성전들이 세계 곳곳에 세워졌고, 탈무드라는 정신적 나침반이 유대인들의 삶을 안내했다.
그것이 바로, 성전 없이도 살아남은 유대교의 진짜 비밀이다. 신앙이란 건물을 짓는 게 아니라, 이야기와 기억, 삶을 이어가는 것임을 유대교는 우리에게 가르쳐주었다. 우리도 언젠가 삶의 '성전'이 무너질 때, 그 자리에서 어떤 구조로 다시 서게 될지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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