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에 기록된 예수의 성전 파괴 예언이 실제 역사적 사건 이후에 삽입된 "사후 예언"(vaticinium ex eventu)인지에 대한 문제는 신약 성서 학계에서 가장 논쟁적인 주제 중 하나이다. 이 문제는 마태복음의 작성 연대와 직결되어 있으며, 복음서의 역사적 신뢰성과 예언의 진정성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학자들은 크게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는데, 다수 학자들은 마태복음이 서기 70년 성전 파괴 이후에 작성되어 예언이 사후에 삽입되었다고 보는 반면, 보수적 학자들은 실제 예언의 가능성을 주장하고 있다.
사후 예언(Vaticinium Ex Eventu) 이론의 배경
"사후 예언"(vaticinium ex eventu)은 실제로는 사건이 일어난 후에 작성되었지만 마치 사건 이전에 예언된 것처럼 기록된 텍스트를 의미하는 신학적 용어이다. 이 개념은 "사건으로부터의 예언"이라는 라틴어 표현으로, 저자가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이 미래의 일인 것처럼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자유주의 고등비평학자들은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에 기록된 예수의 성전 파괴 예언을 이러한 사후 예언의 전형적인 사례로 본다. 이들은 서기 67년부터 70년까지의 로마-유대 전쟁 이후에 이러한 전승이 발달했으며, 이것이 공관복음서의 자료가 되었다고 가정한다. 특히 예수에게 귀속된 예루살렘 파괴에 관한 진술들(예: 마가복음 13:14, 누가복음 21:20)은 성전이 파괴된 서기 70년 사건과 관련하여 대다수 성서학자들에 의해 사후 예언의 사례로 간주된다.
이러한 관점의 핵심 논리는 예언의 정확성 자체에 있다. 한 학자는 "1960년대에 테러리스트들이 비행기를 세계무역센터에 충돌시킬 것이라고 정확히 예측한 사람을 묘사하는 텍스트를 발견했는데 그 텍스트가 언제 작성되었는지 모른다면, 이것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한 사례일 가능성과 2001년 이후에 작성되었을 가능성 중 어느 것이 더 높은가?"라는 비유로 이를 설명한다. 이는 예언의 정확성이 오히려 사후 작성의 증거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마태복음 후기 작성설의 근거
학계의 일반적 합의
현대 신약학계에서는 마태복음이 서기 70년 이후에 작성되었다는 것이 거의 일치된 견해이다. 레이몬드 브라운은 마태복음을 "80-90년경, 전후 10년 정도"로 연대를 추정하며, "대다수 견해는 마태복음을 70-100년 사이로 본다"고 밝혔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도 "마태복음은 그리스어로 작성되었으며, 아마도 서기 70년 이후 어느 시점에, 앞선 마가복음에 명백히 의존하여 작성되었다"고 기술한다.
위키피디아의 학자들 합의 정보에 따르면, 학자들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을 서기 80-90년으로 연대를 추정한다. 이러한 후기 연대 추정의 주요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성전 파괴 예언이다. 바트 어만은 신약학자들이 복음서를 서기 70년 이후로 연대를 추정하는 이유를 설명하면서, 예수가 성전 파괴를 예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것이 실제 예언이기보다는 사후에 삽입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개연성이 높다고 설명한다.
텍스트 내적 증거들
후기 작성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마태복음 내의 여러 구절들이 성전 파괴가 이미 일어난 후에 작성되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레이몬드 브라운은 마태복음 21장 13절에서 성전이 "모든 민족을 위한" 기도의 집이라는 마가복음 11장 17절의 표현이 생략된 것과, 마태복음 22장 7절에서 왕이 성을 불태운다는 언급이 서기 70년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 파괴를 반영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마태복음 22장 7절의 혼인 잔치 비유에서 "왕이 노하여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들의 동네를 불사르니라"는 표현은 많은 학자들이 서기 70년 성전 파괴 사건을 반영한 것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구체적인 묘사는 단순한 미래 예언이라기보다는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회고적 서술로 여겨진다.
초기 작성설과 실제 예언 가능성
보수적 학자들의 반박
그러나 일부 보수적 학자들은 마태복음의 초기 작성 가능성과 예수의 실제 예언 능력을 주장한다. N.T. 라이트와 존 웨넘 같은 학자들은 마태복음을 1세기 후반으로 연대를 추정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며, 40-50년대에 작성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들은 다양한 목격자들이 1세기 말까지 생존했을 통계적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하며, 마르쿠스 보크뮬은 이러한 생전 기억의 구조를 다양한 초기 기독교 전승에서 발견한다고 밝혔다.
실제 예언 가능성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예수가 단순히 진정한 예언자일 필요도 없이, 단지 "시대의 징조"를 예리하게 관찰할 수 있는 인물이었다면 충분히 유대-로마 간의 반감과 그로 인한 전쟁의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성전은 이미 한 번 파괴된 적이 있었고, 다시 파괴될 수 있다는 두려움은 실재했다. 더욱이 예수만이 성전 파괴를 예언한 것이 아니라 다른 인물들도 미리 예측했다는 점이 이를 뒷받침한다.
텍스트 분석상의 반증
일부 학자들은 마가복음 13장 18절의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하라"는 구절이 오히려 성전이 아직 서 있을 때 작성되었음을 시사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성전은 겨울이 아닌 봄에 파괴되었는데, 만약 복음서 저자들이 이미 성전 파괴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왜 이런 표현을 추가했을까 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는 성전 파괴가 임박한 위험으로 느껴지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상황에서, 즉 유대-로마 전쟁 중이지만 성전이 실제로 파괴되기 이전에 작성되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또한 마가복음 13장 24-27절의 내용도 고난(유대-로마 전쟁) 이후에 세상의 종말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듯한 어조를 보이는데, 이는 종말이 오지 않은 전쟁 후보다는 세상의 종말이 쉽게 느껴질 수 있었던 전쟁 중에 더 적합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양측 논증의 한계와 방법론적 문제들
사후 예언설의 논리적 역설
사후 예언설을 지지하는 학자들조차 이 이론의 논리적 문제점을 인정한다. 포러너 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사후 예언 이론은 "복음서가 너무 이르거나 너무 늦게 작성될 수 없다"는 역설에 직면한다. 만약 마태복음의 올리브산 강화(Olivet Discourse)가 서기 70년 이후에 갑자기 나타났다면, 1세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사전 지식 없이 이를 받아들일 수 있었겠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다.
이들은 "만약 예수가 정말로 이런 놀라운 말씀을 하셨다면, 왜 서기 70년 이전에는 아무도 이에 대해 알지 못했는가?"라는 당연한 질문에 직면하게 된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사건 후에 거짓 예언을 작성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그것이 명백히 거짓임을 확실히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검증 가능한 거짓 예언을 전달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논리적 반박이 제기된다.
해석학적 접근법의 차이
양측의 논쟁은 근본적으로 해석학적 접근법의 차이에서 비롯된다. 전천년주의적 관점을 취하는 학자들은 올리브산 강화가 이스라엘의 미래에 관한 궁극적 해설이며, 잘못된 휴거 체계들이 길을 잃는 시험장이라고 본다. 이들은 강화의 더 큰 맥락과 직접적 맥락이 이스라엘이 주요 초점임을 결정적으로 보여준다고 주장한다.
반면 전재난설(preterism)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올리브산 강화가 주로 서기 70년경의 사건들로 성취되었다고 가르치지만, 해석학적으로 타협에 빠져 비문자적 해석에 의존해야 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마태복음 24장의 여러 사건들이 명백히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이들은 그러한 사건들을 영적으로 해석해야 하는 강박에 직면한다.
현대적 관점에서의 재평가
전승사적 접근법의 한계
편집비평학(redaction criticism)이 제기하는 전승사적 접근법은 두 가지 기본 가정에 의존한다. 첫째, 복음서를 포함한 신약의 기독론이 예수 자신의 진정한 가르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예수에 대한 반응에서 나왔다는 가정이며, 둘째, 복음서 저자들이 보존한 예수의 진정한 가르침은 상대적으로 적은 분량이며, 교회 발전의 다양한 단계에서 추가된 내용들을 식별하고 제거함으로써 분리해낼 수 있다는 가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법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다. 만약 복음서 저자들이 역사적인 것과 케리그마적인 것을 구분할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고 있었다면(그럴 만한 근거가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들이 예수의 말씀과 행적에 대한 전승 자료들을 존중하지 않고 다뤘을 가능성은 낮다. 특히 목격자들이 아직 살아있었다면(그럴 가능성이 높은데), 복음서 저자들은 더욱 존중하는 태도를 보였을 것이다.
고고학적 및 역사적 맥락
마가복음 14장 58절의 예수의 성전 예언에 대한 최근 연구들은 형식비평, 편집비평, 문학비평, 구조비평을 사용하여 예언의 전승사를 밝히고 원래의 아람어 형태를 재구성하려고 시도한다. 이러한 분석들은 예언의 역사성을 지지하며, 애가, 경고, 위협의 전형적인 4-2박자 키나(kīnā) 운율을 확인한다.
역사적 신뢰성을 지지하는 여러 기준들이 적용될 수 있다. 첫째, 다중 증언 기준에 따르면 독립적인 자료들에서 유사한 내용이 발견된다. 둘째, 난처함 기준에 따르면 이것은 거짓 예언으로 보일 수 있어 그리스도인들이 선교를 하는 데 더 어려움을 주었을 것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이를 발명했을 가능성은 낮다. 셋째, 마가복음 11장에 보고된 예수의 성전 행동과 일치하며, 이는 예수의 십자가형을 설명해주므로 역사가들이 진정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결론
마태복음의 예수 성전 파괴 예언이 제자들에 의해 사후 삽입되었는지에 대한 문제는 단순한 연대 추정을 넘어선 복잡한 해석학적, 신학적 쟁점이다. 학계의 주류적 견해는 마태복음이 서기 70년 이후에 작성되었으며 성전 파괴 예언이 사후 예언의 성격을 갖는다고 보지만, 이에 대한 반박도 상당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사후 예언설의 핵심 약점은 논리적 일관성의 부족에 있다. 성전 파괴 후에 갑자기 등장한 예언을 당시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쉽게 받아들였을 것이라는 가정은 현실적이지 않다. 반면 실제 예언설도 예언의 정확성이라는 근본적 의문에 직면한다.
결국 이 문제는 역사적 예수 연구의 방법론과 전제에 대한 더 근본적인 질문들과 연결되어 있다. 자연주의적 세계관에서는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언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므로 사후 삽입설이 선호되는 반면, 초자연적 가능성에 열려있는 관점에서는 실제 예언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현재로서는 양측 모두 결정적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해석자의 전제와 방법론적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열린 문제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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