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2 성경의 유아 학살 서사: 반복적 등장의 신학적 및 문학적 의미
성경에서 유아 학살이라는 극단적인 사건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현상은 단순한 역사적 기록의 반복이 아니라, 깊이 있는 신학적 메시지와 문학적 구조를 담고 있다. 모세의 탄생 당시 이집트 파라오의 히브리 남아 학살 명령(출애굽기 1:22)과 예수 탄생 시 헤롯 대왕의 베들레헴 유아 학살(마태복음 2:16)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의도적인 평행 구조로 설계된 서사이다. 이러한 반복은 구약과 신약을 관통하는 구원사적 연속성을 강조하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역사를 통해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보여주는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모세와 예수의 평행 구조를 통한 신학적 연속성
의도적 평행 서사의 구성
마태복음 저자는 예수를 "새로운 모세"로 제시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모세의 생애와 평행하는 서사 구조를 구성했다. 이러한 평행 구조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신학적 목적을 가진 문학적 장치이다. 모세와 예수 모두 악한 왕의 유아 학살 명령에서 살아남았으며, 모두 이집트와 연관된 피난 경험을 가지고 있다. 또한 두 인물 모두 40일간의 금식을 경험했고, 산에서 하나님의 법을 선포했다는 공통점을 보인다.
이러한 평행 구조는 예수가 단순히 새로운 선지자가 아니라 모세를 능가하는 새로운 구원자임을 강조한다. 마태복음은 예수의 생애를 다섯 개의 주요 담화로 구성함으로써 모세오경의 구조와 평행을 이루며, 예수를 새로운 율법 수여자로 제시한다. 이는 구약의 구원 사건이 신약에서 더 완전한 형태로 성취됨을 보여주는 신학적 장치이다.
구속사적 연속성의 강조
모세와 예수의 평행 구조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역사를 통해 지속적으로 전개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 상태에서 해방시켰다면, 예수는 전 인류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더 큰 구원을 이룬다. 이러한 구속사적 연속성은 구약의 사건들이 신약 사건들의 예표(typology)가 됨을 보여준다.
유아 학살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보호를 받으며 살아남는 구조는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 의지를 강조한다. 인간의 악한 계획조차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막을 수 없다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전달된다.
고대 근동의 순환적 역사관과 반복 서사
순환적 시간관의 문화적 배경
고대 근동 문화에서는 직선적 시간관보다는 순환적 시간관이 지배적이었다. 이러한 세계관에서 역사는 반복되는 패턴을 가지며, 과거의 사건들이 미래에 다시 일어날 것으로 이해되었다. 중국, 힌두, 그리스 문화권에서는 우주적 시간과 인간사가 모두 순환하는 리듬을 가진다고 여겨졌다.
성경의 순환적 역사관은 이러한 고대 근동의 문화적 배경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요셉이 형제들에 의해 스겜에서 노예로 팔려갔다가 430년 후 그의 유골이 같은 스겜에 묻히는 것은 역사의 순환적 완성을 보여준다. 이처럼 성경은 "돌아옴(return)"이라는 주제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어떻게 완성되는지를 보여준다.
예표론적 역사 이해
성경의 순환적 특성은 예표론(typology)과 예언을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구약의 인물과 사건들은 신약에서 더 완전한 형태로 성취되는 예표가 되며, 이러한 구조는 하나님이 역사의 저자임을 보여준다. 모세의 유아 학살 경험이 예수의 경험과 평행을 이루는 것은 이러한 예표론적 구조의 대표적 사례이다.
문학적 장치로서의 반복과 강조 효과
반복의 수사학적 기능
성경에서 반복은 중요한 주제나 교리를 강조하기 위한 문학적 수사 기법이다. 고대 근동 문학에서 반복은 텍스트를 구조화하고 관련된 단락들을 연결하는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이사야 6장 3절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와 같은 삼중 반복은 하나님의 절대적 거룩성을 강조하는 대표적 사례이다.
유아 학살 서사의 반복 역시 이러한 문학적 장치의 일환으로, 하나님의 구원 계획의 확실성과 악한 세력에 대한 궁극적 승리를 강조한다. 반복을 통해 독자들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지속적이고 일관된 패턴을 가진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기억과 전승을 위한 구조
고대 사회에서 문학 작품은 주로 구전으로 전승되었기 때문에, 기억하기 쉬운 구조가 중요했다. 반복적 서사 구조는 청중들이 중요한 신학적 메시지를 기억하고 전달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모세와 예수의 평행 구조는 유대 공동체가 메시아에 대한 기대를 구체화하고 예수의 메시아성을 인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신학적 메시지와 실존적 의미
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 선언
유아 학살이라는 극단적 악행조차도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저지할 수 없다는 메시지가 반복적으로 전달된다. 파라오와 헤롯이라는 당대의 최고 권력자들의 악한 계획이 오히려 하나님의 구원자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역설적 구조를 보여준다. 이는 인간의 악이 아무리 극심해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막을 수 없다는 신앙적 확신을 제공한다.
고난을 통한 구원의 패러다임
유아 학살 서사는 구원이 고난과 희생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성경적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무고한 생명의 희생은 인간 세상의 죄악성을 드러내며,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 개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구조는 예수의 십자가 희생으로 이어지는 구원사의 핵심 주제를 예고한다.
결론
성경에서 유아 학살 서사가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역사적 우연이 아니라 깊이 있는 신학적 목적을 가진 문학적 구성이다. 모세와 예수의 평행 구조를 통해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이 강조되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역사를 통해 일관되게 전개됨을 보여준다. 고대 근동의 순환적 역사관과 반복적 문학 기법이 결합되어,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구원의 확실성을 강력하게 전달한다. 이러한 서사 구조는 단순한 역사 기록을 넘어서 신앙 공동체에게 희망과 확신을 제공하는 실존적 메시지로 기능한다. 따라서 유아 학살의 반복적 등장은 성경이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라 구원사적 관점에서 편집된 신학적 문서임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