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화폐 발행 지속 의사에 대한 정치 경제학적 고찰
지역화폐는 한국 지방정치에서 가장 논쟁적인 정책 중 하나로, 경제적 효과에 대한 의문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이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2018년 본격 도입 이후 지역화폐는 전국 243개 지자체 중 190곳에서 발행되며 급속히 확산되었으나, 그 실질적 경제효과에 대해서는 학계와 정책기관에서 상반된 평가가 지속되고 있다. 특히 윤석열 정부의 지원 삭감 정책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이 자체 예산을 투입하면서까지 정책을 유지하는 현상은 지역화폐가 단순한 경제정책을 넘어선 정치적 도구로 기능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본 연구는 이러한 현상의 정치경제학적 메커니즘을 분석하여 정치인의 지역화폐 지속 의사 결정 요인을 고찰한다.
지역화폐의 정치적 효용성과 선거 전략
직관적 유권자 지지 확보 수단
지역화폐는 정치인에게 즉각적이고 가시적인 정치적 성과를 제공하는 핵심 도구로 작용한다. 2025년 대선 국면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지역화폐 발행 규모 대폭 확대"를 1호 추경의 축으로 공약화한 사례는 이러한 정치적 유용성을 잘 보여준다. 이 후보는 "내수를 촉진하고 매출을 키우겠다"며 지역화폐를 통한 "상권르네상스 2.0"을 제시했는데, 이는 복잡한 거시경제 정책보다 훨씬 직관적이고 체감 가능한 공약으로 기능한다.
특히 지역화폐는 '현금성 지원'으로 인식되어 높은 정치적 만족도를 창출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추진했던 "대덕e로움" 사례에서 보듯, 지역화폐 도입 후 두 차례 정책 효과 평가에서 "지역 상권 활성화에 크게 도움"이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정치인에게 정책 성공 사례로 홍보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하며, 유권자와의 직접적인 정서적 연결고리를 형성하게 한다.
선거 캠페인 도구로서의 활용
2025년 대선에서 민주당이 진행한 "21일간 전국 지역화폐 사용 챌린지"는 지역화폐가 선거 캠페인 도구로 적극 활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재명 후보가 경북 영천공설시장에서 직접 지역화폐로 결제하며 챌린지를 시작한 것은 정책의 실용성을 강조하는 동시에 서민 친화적 이미지를 구축하는 전략이다. 한병도 민주당 국민참여본부 총괄본부장은 "지역화폐는 위기의 골목 상권을 살릴 가장 직접적이고 효과적이며 검증된 방식"이라고 강조하며, 이를 "따뜻한 방법"으로 프레이밍했다.
이러한 접근은 정치학의 네거티브 선거 이론에서 언급하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현상과 대조적이다. 지역화폐는 복잡한 정책 논쟁보다 단순하고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어,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고 호감을 유발하는 데 효과적이다.
차별화된 정치적 정체성 구축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가 지역화폐 대신 온누리상품권 확대(5.5조원→6조원)를 공약으로 제시한 것은 정당 간 정책 차별화 전략을 보여준다. 김 후보는 "재정 부담 논란이 끊이지 않는 지역화폐보다는 지난 정부가 추진해온 디지털 온누리상품권 활성화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이는 지역화폐가 단순한 경제정책을 넘어 정치적 정체성과 이념적 지향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적 효과 논란과 정치적 해석의 괴리
상반된 연구 결과와 정치적 선택적 인용
지역화폐의 경제적 효과에 대한 학술적 평가는 극명하게 갈린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의 2020년 연구는 "지역화폐의 신규 도입이나 확대 발행이 해당 지역의 고용 규모에 유의미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으며, 올해 경제적 순손실이 2,260억원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부산연구원의 조사는 "지역화폐의 경제 효과가 일반 예산 투입 대비 소비 창출이 2.56배로 높다"는 상반된 결과를 제시했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연구 결과 중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에 부합하는 것을 선택적으로 인용한다. 박병석 전 국회의장은 "지역화폐는 비용 대비 효과가 좋은 가성비 뛰어난 정책"이라며 "관리 비용이 조금 들기는 하지만 부담스러운 수준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는 부정적 연구 결과를 의도적으로 축소하면서 정책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총량 효과와 순 효과의 혼동
김영철의 연구는 기존 지역화폐 연구에서 "총 경제효과"와 "순 경제효과"를 혼동하는 문제를 지적했다. 지역화폐는 "새롭게 창출된 가치를 보유하지 않는" 대안적 수단이므로, 실제 효과는 일반화폐 대비 순증분만을 측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은 발행 총액이나 가맹점 수와 같은 총량 지표를 정책 성과로 홍보하는 경향이 강하다. 2022년 지역화폐 총 발행액이 27조 2,000억원까지 증가했다는 수치가 대표적 사례다.
이러한 총량 중심의 성과 평가는 정치적으로는 효과적이지만 경제학적으로는 왜곡된 인식을 초래한다. 조세재정연구원이 지적한 바와 같이, "온누리상품권 등 다른 상품권이나 현금을 단순 대체하는 경우에는 소형마트의 매출을 늘리는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경로의존성과 제도적 관성
정책 철회의 정치적 비용 증가
경로의존성 이론에 따르면, "한번 선택된 경로는 큰 계기가 없는 한 지속되는" 특성을 가진다. 지역화폐 정책은 도입 초기의 우발적 선택이 자기강화 메커니즘을 통해 지속되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2020년 코로나19라는 외부 충격으로 지역화폐가 급격히 확산된 후, 정책 수혜층의 기대가 형성되면서 철회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2022년 정부의 지역화폐 예산 전액 삭감 시도에 대한 소상공인들의 강한 반발이 이를 보여준다. 소상공인연합회 관계자는 "지역화폐 총 발행액을 보면 소상공인의 경우 지역화폐로 큰 도움을 받고 있다"며 "현재는 지역화폐와 같이 불특정 다수의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이 없는데 이런 정책마저도 예산을 삭감한다면 소상공인에게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강력히 반발했다.
자기강화 메커니즘의 작동
지역화폐는 발행 이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기득권을 형성하면서 정책 지속을 위한 압력집단으로 발전한다. 전국 243개 지자체 중 190곳이 발행하면서 사실상 전국적 네트워크가 구축되었고, 2023년 기준 전국 가맹점이 266만 곳에 이르는 거대한 생태계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개별 정치인이 일방적으로 정책을 중단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워졌다.
특히 재정 자립도가 높은 지자체일수록 "부자 지자체가 더 많은 소비 유치 → 세수 증가 → 추가 발행 여력 확보"라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하며 경로의존성을 강화하고 있다. 성남시 7,500억원, 화성시 5,000억원 등 재정 건전성이 우수한 수도권 지자체들이 대규모 발행을 지속하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중앙-지방 정부 간 정치적 갈등 구조
정부 지원 삭감과 지방의 자율 대응
윤석열 정부는 지역화폐를 "포퓰리즘 정책"으로 규정하며 지속적으로 지원을 삭감해왔다. 2022년 8,050억원이었던 정부 지원금은 2023년 3,522억원, 2024년 3,000억원으로 감소했고, 2025년 예산에는 관련 지원금을 책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들은 자체 예산을 투입하면서까지 정책을 유지하고 있어, 중앙-지방 간 정책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갈등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더욱 격화되었다. 전남도는 시·군 지역화폐 지원예산을 70억원에서 175억원으로 대폭 늘렸고, 광주광역시는 할인율을 7%에서 10%로 상향 조정했다. 경기도도 내년 지역화폐 예산을 1,043억원으로 전년 대비 10% 증액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윤석열 정부는 지역화폐를 '포퓰리즘' 정책으로 낙인찍어왔지만 계엄사태로 인한 경기 침체를 빠르게 극복하기 위해서는 지역화폐 말고 대안이 없다"면서 "'대통령이 친 사고'를 지방정부가 나서 수습할 수 있는 것도 민주주의가 지켜졌기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재정 분담 구조의 비대칭성
현재 지역화폐는 국가 2원, 도 2원, 시군 3원을 각각 부담하는 분담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중앙정부의 지원 중단으로 지방자치단체가 전액을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서, 재정 여력에 따른 지역 간 격차가 심화되고 있다. 제천시는 개인 구매 한도를 50만원에서 30만원으로, 단양군은 70만원에서 20만원으로 축소하는 등 재정 취약 지자체들이 발행 규모를 줄이고 있다.
반면 재정력이 우수한 지자체들은 국비 지원 감소분을 자체 예산으로 메우며 발행 규모를 유지하거나 확대하고 있다. 경기도는 2024년 국비 지원이 58.8% 감소했음에도 도비와 시군비를 28.3% 확대하여 총 발행 규모를 4조 263억원 수준으로 유지했다. 이러한 비대칭적 대응은 지역화폐가 "부자 지자체의 전유물"로 전락할 위험성을 높이고 있다.
이해관계자 압박과 정치적 생존 전략
소상공인 집단의 조직적 압력
지역화폐는 소상공인이라는 명확한 수혜 집단을 형성하면서 강력한 정치적 압력집단을 만들어냈다. 전국 266만 곳의 가맹점이 지역화폐를 통해 직접적인 경제적 이익을 얻고 있어, 이들의 정치적 영향력은 상당하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지역화폐 예산 삭감에 대해 "민생을 외면한 처사"라고 강하게 반발하며, 정치인들에게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특히 농촌 지역에서는 지역화폐 사용처 제한으로 인한 불편이 가중되면서 정치인들에게 더 큰 압박이 가해지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연매출액 30억원을 넘는 사업장을 가맹점에서 제외하자, 농협 하나로마트에서 지역화폐 사용이 불가능해졌다. 전북 장수군의 한 이장은 "생활편의시설이 부족한 농촌은 예외를 둬야 한다"며 "가뜩이나 농촌에서 살기 불편하다는 소리가 나오는데 장 보기도 어려운 곳에 누가 귀농이나 귀촌을 하겠느냐"고 강하게 항의했다.
정치적 생존과 표심 관리
지방자치단체장들에게 지역화폐는 재선을 위한 핵심 정치 도구로 기능한다. 지역화폐 중단은 즉각적인 유권자 반발로 이어질 수 있어, 정치인들은 재정 부담을 감수하더라도 정책을 유지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이재명 후보가 "돈이 문제가 아니라 마음(결심)의 문제"라고 강조한 것은 이러한 정치적 계산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80% 가까운 지자체가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지역화폐는 단순한 지역 사무가 아니다"라는 박병석 전 국회의장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이, 지역화폐는 이미 지방정치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다. 개별 정치인이 이를 거스르기는 정치적으로 매우 위험한 선택이 되었다.
제도적 경쟁과 지역 간 제로섬 게임
할인율 경쟁의 정치경제학
지역화폐는 인접 지자체 간 할인율 경쟁을 유발하면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을 만들어내고 있다. 김영철의 이론 모형에 따르면, "한 도시에만 지역화폐가 도입되면, 다른 도시의 상인들에게 불이익이 따르므로 지역화폐를 도입하지 않은 도시 역시 발행에 나서게 된다". 결국 "두 도시 모두 지역화폐 발행에 동참하게 되는데, 이는 최적대응에 따른 자연스런 추론"이라고 분석했다.
2025년 기준 주요 지자체의 할인율을 보면, 성남시 10%, 화성시 9% 등 재정 강세 지역은 높은 할인율을 유지하는 반면, 포항시 6%, 경주시 5% 등 재정 취약 지역은 낮은 할인율을 적용하고 있다. 이러한 격차는 소비 유출을 방지하기 위한 경쟁적 확대 압력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천시는 캐시백 비율 하향 조정으로 결제액이 2022년 4조 5,000억원에서 2023년 3조 2,000억원으로 급감한 반면, 할인율을 유지한 지역은 소비 유입을 증가시켰다.
지역경제 활성화에서 소비 유치 경쟁으로의 변질
조세재정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특정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은 인접한 지자체의 지역화폐 발행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는데, 결국 모든 지역에서 지역화폐를 발행하게 되면 매출 증가 효과는 줄고 발행 비용만 순효과로 남게 된다". 이는 지역화폐가 본래 목적인 지역경제 활성화보다는 "인근 지자체와의 소비 유치 경쟁"으로 변질되었음을 의미한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제로섬 게임의 함정을 인식하면서도 개별적으로는 빠져나올 수 없는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 한 지자체가 일방적으로 지역화폐를 중단하면 인접 지역으로 소비가 유출되고, 이는 곧 정치적 비난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적 제약은 지역화폐 정책의 전국적 확산을 더욱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론
지역화폐는 경제정책으로서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도구로서는 매우 효과적인 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본 연구는 정치인들이 지역화폐 발행을 지속하는 주요 요인으로 첫째, 직관적이고 가시적인 유권자 지지 확보 수단으로서의 정치적 효용성, 둘째, 정책 철회 시 발생하는 높은 정치적 비용, 셋째, 경로의존성에 따른 제도적 관성, 넷째, 소상공인 등 이해관계자 집단의 조직적 압박, 다섯째, 지자체 간 할인율 경쟁으로 인한 구조적 제약을 확인했다.
특히 2025년 대선 국면에서 지역화폐가 핵심 공약으로 부상한 것은 이 정책이 단순한 경제적 수단을 넘어 정치적 정체성과 이념적 지향을 표현하는 상징적 도구로 발전했음을 보여준다. 윤석열 정부의 지원 삭감에도 불구하고 지방자치단체들이 자체 예산을 투입하면서까지 정책을 유지하는 현상은 지역화폐가 이미 지방정치의 필수 요소로 자리잡았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분석 결과는 향후 유사한 복지성 정책의 설계와 평가에서 경제적 효율성뿐만 아니라 정치적 지속가능성을 함께 고려해야 함을 시사한다. 또한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변경이나 예산 삭감만으로는 지방정치에 뿌리내린 정책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한계도 드러났다. 앞으로는 경로의존성의 제약 조건 하에서 정책의 점진적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인 접근법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