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시기 유대인 인구와 정착 양상
1세기 로마 제국 전역에 거주했던 유대인의 규모는 당시 제국 인구의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주요 민족 집단이었다. 그리스 역사가 스트라본이 "모든 나라로 유대인이 스며들어, 지상에 유대인이 없는 곳은 찾아볼 수 없다"고 평가했듯이, 유대인들은 지중해 전역에 광범위하게 분산되어 있었다. 특히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와 그 주변 지역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으며, 이들은 제국의 경제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로마 제국 내 유대인 전체 인구 규모
1세기 유대인 디아스포라의 전체 규모
서기 66-73년 로마에 대한 유대인들의 제1차 봉기 직전, 전 세계 유대인 인구는 대략 800만 정도로 추정된다. 이는 당시로서는 매우 큰 규모로, 로마 제국 전체 인구의 약 10% 수준에 해당하는 수치였다. 이러한 규모는 로마 황제조차도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민족 집단이었음을 의미한다.
800만 유대인 중에서 로마 통치 밖에 있었던 고대 이란의 파르티아 제국 내에는 약 100만 가량이 거주했으며, 나머지 700만은 로마제국이 관할하는 지역에 분산되어 살았다. 이 700만 중에서도 250만명 가량이 팔레스타인 본토에 거주했고, 나머지 450만명은 이집트, 소아시아, 시리아, 이탈리아 반도 등 제국 전역에 흩어져 살았다.
지역별 유대인 분포
로마 제국 내 유대인들의 분포는 매우 광범위했다. 특히 지중해 연안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는 도시 전체 인구의 40%가 유대인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북아프리카의 키레나이카 지역에도 약 10만 가량이 거주했으며, 이들은 주요 상업 도시들을 중심으로 강력한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로마시와 이탈리아 반도의 유대인 인구
로마 도시 내 유대인 공동체
로마 제국의 수도인 로마시에는 대략 5만 가량의 유대인이 거주하고 있었다. 이는 당시 로마시 전체 인구를 고려할 때 상당한 비중이었으며, 유대인들은 도시 내에서 독특한 지역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의 주된 거주지는 테베레강 건너편의 트라스테베레(Trastevere) 지역이었으며, 이 외에도 로마 남서쪽 카페나 성문 앞 지역에도 유대인 거주지가 있었다.
필로의 기록에 따르면, "티베르 강 건너편 로마 도시의 상당 부분이 유대인들 소유이자 그들의 거주지였다"고 기술되어 있으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자유인이었고 로마 시민권을 보유하고 있었다. 이는 유대인들이 단순한 이주민이 아니라 로마 사회에 상당히 통합된 집단이었음을 보여준다.
이탈리아 반도 전체의 유대인 인구
제국 초기인 1세기에 이탈리아 전체에는 약 5만명의 유대인이 거주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 중 절반 이상이 로마와 그 주변 지역에 집중되어 있었다. 로마 외에도 유대인들은 오스티아, 포르토, 포촐리, 폼페이, 카푸아, 살레르노 등의 항구 도시들과 바실리카타, 아풀리아, 칼라브리아 지역의 바리, 오트란토, 타란토, 베노사, 레지오, 그리고 시칠리아의 시라쿠사, 카타니아, 아그리젠토 등에 정착했다.
북부 이탈리아에서도 치비타베키아, 페라라, 브레시아, 밀라노, 폴라, 아퀼레이아 등에서 유대인들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다. 이러한 광범위한 분포는 유대인들이 주로 상업과 무역에 종사하면서 교통의 요지와 상업 중심지를 중심으로 정착했음을 보여준다.
로마시 유대인 공동체의 특징
사회적 지위와 경제 활동
로마에 거주하던 유대인들의 사회적 지위는 다양했다. 이들 중 상당수는 원래 전쟁 포로로 로마에 끌려온 이들이었지만, 같은 종교를 가진 자들이 몸값을 지불해주거나 로마인 주인들이 풀어준 경우가 많았다. 풀려난 유대인들은 테베레강 오른쪽 강변에 무역상으로 정착했으며, 이것이 로마 유대인 지구의 기원이 되었다.
로마의 유대인들은 주로 겸손한 직업에 종사했으며 프롤레타리아 지역에 거주했지만, 화가, 배우, 시인 등 문화적 활동에 참여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들의 공동체는 회당을 중심으로 조직되었으며, 로마에는 12개의 회당이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종교적 자유와 로마 정책
로마 제국은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에게 종교적 관용 정책을 펼쳤다.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유대인들이 응집력 있는 요소라고 믿고 그들이 종교적 의무를 이행할 수 있도록 특정 면제 혜택을 부여했으며, 이러한 면제는 대부분의 로마 황제들에 의해 계속 확인되었다. 아우구스투스 시대에는 수도의 유대인 수가 증가했으며, 이들은 회당을 가지고 특히 거룩한 안식일에는 공공연히 조상들의 철학으로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때로는 긴장 관계도 발생했다. 티베리우스 황제 시대인 서기 19년에는 그의 측근 세야누스가 4,000명의 유대인 청년들을 사르데냐로 추방하여 산적과 싸우게 했으며, 종교적 관습을 포기하지 않으면 이탈리아를 떠나라는 칙령도 발표되었다.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대에도 "크레스토스라는 자신들의 지도자 영향 하에서 계속 소란을 일으켰기 때문에"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하는 일이 있었다.
결론
1세기 로마 제국 시기, 로마와 그 주변 지역에는 상당한 규모의 유대인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로마시에만 약 5만명, 이탈리아 전체에는 약 5만명의 유대인이 거주했으며, 이는 제국 전체 700만 유대인 인구 중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다. 이들은 단순한 소수 민족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경제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집단이었으며, 상당한 정도의 사회적 통합을 이루면서도 고유한 종교적 정체성을 유지했다. 바빌론 유수로 시작된 유대인 디아스포라는 로마 제국 시기에 이르러 지중해 전역으로 확산되었으며, 특히 로마와 같은 대도시에서는 번영하는 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