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교회와 유대인 구원론
가톨릭교회의 유대인에 대한 구원관은 20세기 중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기점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전통적으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배타적 구원론을 견지하던 가톨릭교회가 유대인에 대해서만큼은 예외적 입장을 취하게 된 것은 신학적, 역사적, 윤리적 성찰의 결과였다. 2015년 교황청이 발표한 새 문서에서 명시적으로 "가톨릭교회는 유대인을 겨냥한 어떠한 구체적인 제도적 선교 활동을 행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은 이러한 신학적 전환의 완성을 보여준다. 이는 유대인들이 하느님과 맺은 고유한 언약 관계를 인정하며, 그들의 구원 가능성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명시적 신앙 고백 없이도 인정하는 혁명적 변화를 의미한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노스트라 에타테의 역사적 의미
노스트라 에타테의 등장 배경
1965년 10월 28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채택된 「노스트라 에타테」(Nostra Aetate, "우리 시대에")는 가톨릭교회 역사상 처음으로 비그리스도교와의 관계를 긍정적으로 조명한 문서였다. 이 선언은 2,221명의 주교가 찬성하고 88명이 반대하는 압도적 지지로 통과되었다. 특히 4절에서 유대교와의 관계를 다룬 부분은 가톨릭교회 역사상 "유대인과 가톨릭 신자들의 관계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문서"로 평가받는다.
문서의 기원은 교황 요한 23세가 프랑스 유대인 역사학자 쥘 이작(Jules Isaac)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이작은 기독교 교육이 반유대주의를 조장하여 홀로코스트를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하는 문서를 교황에게 제출했고, 이에 감명을 받은 요한 23세는 이 문제를 공의회 안건에 포함시키도록 지시했다.
노스트라 에타테의 핵심 내용
노스트라 에타테는 수세기 동안 지속된 "신살해(deicide)" 논리를 공식적으로 거부했다. 이 문서는 유대인과 가톨릭 신자가 공유하는 종교적 유대관계를 강조하고,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영원한 언약을 재확인했으며, 유대인을 개종시키려는 교회의 관심을 철회했다.
문서는 "사실, 그리스도 교회의 믿음과 불리움은 하느님의 신비로운 구세 계획대로 이미 성조들과 모세와 예언자들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인정한다"고 명시하여, 유대교가 기독교의 뿌리임을 분명히 했다. 또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옛계약을 맺으신 그 백성을 통하여 교회가 구약의 계시를 이어 받았고 이방인들의 야생 올리브 가지가 접목된 좋은 올리브 뿌리에서 교회가 자라고 있음을 잊을 수는 없다"고 선언했다.
신학적 혁신의 의미
노스트라 에타테는 처음으로 가톨릭과 유대인 간의 "친선적 대화와 성경 및 신학적 연구"를 촉구했다. 이는 전통적인 개종 중심의 접근법에서 벗어나 상호 이해와 존중에 기반한 새로운 관계 모델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 문서는 "세계의 주요 신앙 전통들에서 하느님의 역사를 경외한다"는 포괄적 시각을 보여주었다.
교황들의 유대교 관계 개선 노력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혁신적 접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78-2005)는 가톨릭-유대교 관계 개선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폴란드 크라쿠프에서 성장한 그는 어려서부터 유대인 친구들과 함께 지냈으며, 나치 점령 하에서 유대인들의 고통을 직접 목격했다.
1986년 4월 13일, 요한 바오로 2세는 성경 시대 이래로 유대교 회당을 방문한 최초의 교황이 되었다. 로마 시내 유대교 회당에서 그는 유대인들을 "형님들"이라고 불렀으며, "토다 랍바(대단히 감사하다)"라고 히브리어로 인사했다. 이 역사적 만남에서 교황은 "모든 형태의 반유대 편견을 없애야 한다"며 "유대인과 크리스찬은 구약에 뿌리를 둔 특별유대를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폴란드의 수석 랍비 마이클 슈드리히는 "역사상 누구도 요한 바오로 2세만큼 기독교-유대교 대화에 기여한 사람은 없다"며, "많은 유대인들이 일부 랍비들보다 고(故) 교황에 대해 더 큰 존경심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슈드리히는 특히 요한 바오로 2세가 반유대주의를 죄라고 규탄한 최초의 교황이었다고 강조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신학적 명확화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1년 자신의 저서 『나사렛 예수』 제2권에서 유대인 집단 책임론을 개인적 견해로 처음 공식 부인했다. 그는 "사도 요한이 유대인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현대 독자들이 가정할 수 있는 것처럼 일반적인 이스라엘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인종적 의미에서 쓴 것은 더더욱 아니다"라고 명시했다.
베네딕토 16세는 "예수의 죽음에 대한 진짜 책임은 '유대인 전체'가 아닌 당시 '성전 지도자들과 일단의 추종자들'에게 있다"며, "예수의 죽음은 처벌이 아닌 구원을 위한 것이었다. (예수의 피는) 복수나 처벌을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해를 가져온다"고 덧붙였다. 이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공식 부인된 유대인 집단 책임론을 교황이 개인적 견해로 명확히 한 최초의 사례였다.
유대인 집단 책임론의 공식 거부
역사적 배경과 문제점
수세기 동안 기독교 역사에서 마태복음 27장 24-25절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라는 구절이 유대인 전체에 대한 영구적 저주의 근거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유대인 신살해" 논리는 기독교 반유대주의를 부채질했고, 십자군 시대의 유대인 학살, 각국에서의 유대인 추방, 스페인과 포르투갈 종교재판소의 고문,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홀로코스트까지 이어지는 폭력의 신학적 정당화 역할을 했다.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조차 이러한 전통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초기에는 유대인에 대해 관용적이던 루터는 후에 『유대인과 그들의 거짓말』에서 "유대인의 회당과 학교를 불 지르고, 타지 않는 것은 땅에 묻어 흙으로 덮어서 그 흔적을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라"고 주장하기까지 했다.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 변화
1965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노스트라 에타테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처형에 대한 유대인의 집단적 책임 개념을 거부"했다. 이는 16세기 트렌트 공의회에서 이미 "죄를 지은 인류 전체가 예수의 죽음에 책임이 있지, 유대인만이 아니다"라고 가르쳤던 입장을 더욱 명확히 한 것이었다.
2015년 교황청 유대종교관계위원회가 발표한 새 문서는 이러한 입장을 더욱 강화했다. 문서는 "예수의 처형에 대한 유대인의 집단적 책임 개념을 거부한다. 가톨릭은 유대인들이 겪었던 대학살의 비극에 대해 겸손하고 세심하게 신앙을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적 의미
유대인 단체들은 이러한 가톨릭교회의 변화를 환영했다. '홀로코스트 생존자와 후손자들의 미국 모임' 부총재 엘란 스타인버그는 "수세기 동안 반유대주의에 대한 신학적 뒷받침을 해온 '유대인 책임론'을 교황이 정면으로 부인했다는 점에서 주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현대 가톨릭교회의 공식 입장
2015년 교황청 새 문서의 핵심 내용
2015년 12월 9일, 교황청 유대종교관계위원회는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로마서 11:29)라는 제목의 새 문서를 발표했다. 이 문서는 50년 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노스트라 에타테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으며, "미래에 대한 자극"이라고 명명되었다.
문서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가톨릭교회는 유대인을 겨냥한 어떠한 구체적인 제도적 선교 활동을 행하거나 지지하지 않는다". 둘째, "유대교는 단순히 또 다른 종교가 아니라 우리의 형제들이다". 셋째, "유대인들은 성경의 전달자임을 인정해야 한다"며 신학적으로 유대인들이 하느님 구원의 참여자라고 밝혔다.
신학적 근거와 해석
교황청은 "유대인들이 하느님의 구원에 참여자라는 것은 이론적으로 의문의 여지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어떻게 공개적으로 그리스도를 고백하지 않고 그것이 가능한지는 여전히 불가해한 미스터리로 남아있다"고 인정했다. 이는 전통적인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받는다는 교리와 유대인의 특별한 지위 사이의 신학적 긴장을 솔직히 인정한 것이다.
볼로냐의 진보적 가톨릭연구소인 '요한 23세 가톨릭연구소' 알베르토 멜로니 소장은 "유대인이 개종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는다는 원칙을 극복하고, 유대교 나름의 선교를 존중하고 있다"며 "가톨릭교회의 용기 있는 문서"라고 평가했다.
공동 투쟁 강조
새 문서는 유대인과 가톨릭이 "모든 형태의 반유대주의와 공동으로 투쟁해야 한다"며, 2차 대전 중 자행된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을 규탄했다. 또한 "가톨릭은 유대인들이 겪었던 대학살의 비극에 대해 겸손하고 세심하게 신앙을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홀로코스트에 대한 교회의 성찰을 지속적으로 요구했다.
신학적 근거와 해석의 복잡성
로마서 11장의 해석
가톨릭교회의 새로운 입장은 주로 바울의 로마서 9-11장, 특히 11장 29절 "하느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에 근거한다. 이 구절은 하느님이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이 여전히 유효하다는 해석의 근거가 되었다.
그러나 이 해석에는 여전히 신학적 논쟁이 존재한다. 일부에서는 로마서 11장 26절의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구절이 유대 민족 전체의 구원을 의미하는지, 아니면 믿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포함한 영적 이스라엘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제시되고 있다.
요한복음 14장 6절과의 조화
전통적으로 배타적 구원론의 근거가 되었던 요한복음 14장 6절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와 유대인의 특별한 구원 가능성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신학적 과제로 남아있다.
가톨릭교회는 이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가 여전히 구원의 중심이지만, 하느님의 자비가 명시적인 그리스도 신앙 고백을 넘어서 확장될 수 있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 반드시 의식적인 신앙 고백을 전제로 하지 않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결론
가톨릭교회의 유대인 구원론은 20세기 중반 이후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노스트라 에타테로 시작된 이 변화는 요한 바오로 2세와 베네딕토 16세를 거쳐 2015년 교황청의 새 문서에서 완성되었다. 이제 가톨릭교회는 공식적으로 유대인을 개종 대상으로 보지 않으며, 그들이 하느님과 맺은 고유한 언약 관계 안에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인정한다.
이러한 변화는 단순한 정치적 고려나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책감만으로 설명될 수 없다. 그보다는 성경에 대한 더 깊은 이해, 하느님의 자비에 대한 확장된 신학적 성찰, 그리고 타종교와의 대화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이 종합된 결과이다. 물론 이러한 입장은 여전히 신학적 긴장과 미스터리를 포함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기독론과 구원론과의 관계에서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을 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는 가톨릭교회가 보여준 용기 있는 신학적 발전으로 평가받으며, 종교 간 대화와 상호 이해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반유대주의와의 공동 투쟁, 홀로코스트에 대한 지속적 성찰, 그리고 유대인의 종교적 정체성에 대한 존중은 21세기 다종교 사회에서 종교가 평화와 화해에 기여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가 되고 있다.